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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感想

황혼 / 이육사(1904~1944)

by 어링불 2024. 1. 21.

황혼

 

                                                 이육사(1904~1944)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맘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할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을까

 


고비사막을 끊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인디언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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