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狼牧羊(여랑목양)
늑대가 양을 기르다, 벼슬아치가 백성을 착취하다
같을 여(女-3)이리 랑(犭-7)칠 목(牛-4)양 양(羊-0)
음흉한 이리에게 양떼를 돌보게 하면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언제 잡아먹힐지 양들은 전전긍긍하고 늑대는 배를 두드린다. 양들은 순박해 예부터 백성을 비유하는 말이 됐고 양치는 牧(목)이란 글자도 벼슬아치를 가리켰다. 백성을 탐관오리들에게 맡기는 것은 늑대가 양을 기르는 격이라는 것이 이 성어다. 예나 지금이나 청렴결백했던 관리들은 많지 않았던지 '사모 쓴 도적'이란 속담까지 전한다. 茶山(다산)의 牧民心書(목민심서)도 지방관의 도리와 폐해를 적시하여 명저로 남았다.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가혹한 관리들을 모아 酷吏(혹리) 열전에 독립시켰다. 漢武帝(한무제, 재위 기원전 156~87) 때 10명을 포함하여 12명을 다뤘다. 유가의 덕치를 추구했던 循吏(순리)와 대비했지만, 혹리라 해도 무지막지하게 백성을 등친 관리는 아니었다. 법가적 전통을 이어받아 실무적인 경험이 많고, 다만 정리에 좌우되지 않고 분명하게 법을 이행했다. 중앙집권주의을 확립하고자 지방호족을 누르는 것이 임무였기에 혹독한 정치를 펼쳤다
무제 때 寧成(영성)은 의기가 강해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들도 쉽게 다루지 못했다. 內史(내사) 직책에 발탁되자 법을 위반하고 악행을 일삼던 황족이 두려워했다. 영성은 강인한 성품이었지만, 청렴하지 못해 왕의 외척들이 그의 비리를 파헤쳐 고발했다. 영성은 사형을 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선 고리로 장사해서 크게 재산을 일궜다. 뒤에 사면되고서 황제가 영성을 한 고을의 태수로 임명하려 하자 어사대부 公孫弘(공손홍)이 간했다. '영성이 제남에서 도위로 근무할 때 다스리는 방법이 마치 이리가 양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寧成爲濟南都尉 其治如狼牧羊/ 영성위제남도위 기치여랑목양).' 그래서 국경의 도위로 보냈는데 그곳을 출입하는 관리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돌았다. '새끼에게 젖을 물린 호랑이를 만날지언정 영성의 노여움을 사지 말라(寧見乳虎 無値寧成之怒/ 영견유호 무치영성지노).'
오늘날 국민을 괴롭히는 공직자는 드물다. 다만 예산을 횡령한다거나 권한을 남용하는 부패 공무원은 끊이지 않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이름을 올린 고위 공직자들은 떳떳하다 해도 한통속이라 손가락질받는다. 국민을 편하게, 이롭게 할 길이 있음에도 모른 체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면 혹리보다 나은 관리가 될 수 없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심기일전하여 나라를 위하는 공직자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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