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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先公後私(선공후사)

by 어링불 2019. 7. 30.


先公後私 선공후사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룸

[먼저 선(儿/4) 공평할 공(八/2) 뒤 후(彳/6) 사사 사(禾/2)]


公事(공사)를 먼저 하고(先公) 개인적인 일을 뒤에 한다(後私)는 당연한 이 성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다. 이 정신에 투철한 공직자들이 대부분이라 믿지만 국민들은 이것을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口頭禪(구두선)이란 것을 안다. 지위고하 막론하고 수시로 튀어 나오는 부정비리, 자기들만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이익 다툼 등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쉬운 글자로 이루어진 이 성어도 유래가 깊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趙(조)나라 惠文王(혜문왕) 시절 藺相如(인상여, 藺은 골풀 린)라는 충신이 있었다.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이 잘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가까운 친구 刎頸之交(문경지교) 고사의 주인공이다. 인상여는 왕의 신임을 얻기 전까지는 한 대신의 식객에 지나지 않았다. 강국 秦(진)나라가 탐을 내는 和氏之璧(화씨지벽)을 온전히 지킨데다가 澠池(민지, 澠은 땅이름 민)라는 곳에서 진과 조 두 왕의 회동이 있었을 때 수치를 당할 뻔한 문왕을 지켜낸 후로 上卿(상경)이란 지위를 얻게 되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라를 위해 피땀을 흘린 명장 廉頗(염파)는 세치 혀로 벼락출세하는 인상여가 아니꼬웠다. 그래서 염파는 만나면 치욕을 안겨 주리라 공언했고 전해들은 인상여는 피해 다녔다. 측근들이 불평을 늘어놓자 말했다. ‘내가 진왕도 맞섰는데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 두 사람이 있어 진이 넘보지 못한다.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以先國家之急而 後私讎也/ 이선국가지급이 후사수야)에 피하는 것이다.’ 讎는 원수 수, 讐와 같음. 이 말을 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죄를 청하며 깊이 사죄했고 깊은 우정은 후세까지 기리게 됐다.

이렇듯 先公後私를 지켜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온 고사에 비해 오늘날에는 더 강조하여 ‘私를 죽이고 公을 받든다’며 滅私奉公(멸사봉공)까지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지만 믿음을 잃어 사익을 치장하는 말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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