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현대문학>1952
♣ 김춘수 - 시인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서정(현 통영시 동호동)에서 아버지 김영팔(金永八)과 어머니 허명하(許命夏)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천황과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 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단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1981년에 정계로 들어오며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한다.
1948년 첫 시집인 〈구름과 장미〉 출간을 시작으로 시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꽃을 위한 서시〉 등을 발표하였다. 다른 시집으로는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다.
1958년에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에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2004년 8월,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호흡곤란으로 인한 뇌 손상을 입어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지만, 2004년 11월 29일 아침 9시에 82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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