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송
잡초송(雜草頌)
구상·시인, 1919-2004
민들레, 냉이, 달래, 비듬, 떡쑥, 토끼풀, 할미꽃, 범부채, 초롱꽃, 쐐기풀, 이런 것이야 누구나 알지만
홀아비꽃대, 염주괴불주머니, 광대수염, 개부랄풀, 벼룩이자리, 개구리밥, 도깨비쇠고삐, 퉁퉁마디, 무아재비, 며느리배꼽, 개미탑, 큰달맞이꽃, 처녀이끼, 도둑놈갈구리, 도깨비바늘, 거지덩굴, 애기똥풀, 미치광이.......
이렇듯 재미있고 천연(天然)스런 이름들을 들어보기나 했는가?
거지덩굴은 더러운 손자국, 발자국처럼 지저분하고 애기똥풀은 노란 진물이 나오고 미치광이는 흙탕 같은 온몸에 잎과 꽃이 어둡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며느리밑씻개, 참소리쟁이, 갓버섯, 벌레잡이, 오랑캐, 끈끈이주걱, 팔손이나무 등 우리 친구들 이름과 그들의 특징을 주워섬기자면 한이 없다.
옛 부터 일러오기를 하늘이 녹(祿)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싹트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天不生無祿之人, 地不長無名之草(천불생무록지인, 지불장무명지초 : 명심보감 성심편에 수록된 글
사람들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부르짖으면서 길섶이나 밭두렁이나 산비탈에 어느 누구의 신세도 안 빌고 자연으로 싹터서 자연의 구실을 하다 자연히 스러지는 우리들의 본명(本命)!
그대 시인(詩人)이란 것들마저 함부로 잡초(雜草)라 부르고 소외(疎外)하는가!